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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돋는 이야기 a creepy story/해결된 미제사건 모음 a unsolved case

한국의 해결된 미제사건 '양천 채무자 폭행치사 사건'

by 형징 202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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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결된 미제사건 '양천 채무자 폭행치사 사건'

사건 요약

1999년 4월 8일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위치한 대부업체 사무실에서 사채업자와 사채업자의 처남, 조직폭력배 2명. 총 4명이 채무자를 납치 및 감금, 폭행해 사망에 이르고 현금을 갈취한 사건이다.

출처 : 나무위키

사건 내용

피해자인 'A 씨'(사건 당시 41세)는 원래 건축회사를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회사가 부도가 났고, 1년 3개월 뒤인 1999년 3월 사채를 끌었어 가면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에 청과물을 유통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A씨는 부도 후 사채를 너무 많이 끌어 쓴 까닭에 사채업자인 '노희승'(사건 당시 41세)이 A 씨를 추적 및 통화를 시도했으나 A 씨는 노희승의 추적과 통화를 무시하며 잠적하고 있었다.
A 씨의 행동으로 열이 받칠 대로 받친 노희승은 본인의 처남인 '서형택'(사건 당시 32세)과 노희승과 친분이 있던 조직폭력배 '한씨', '한 씨'의 조직원인 '윤병노'(사건 당시 25세) 이 네 명이서 범행을 계획한다.
사건 당일 1999년 4월 8일 A 씨가 어느 술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노희승은 '한 씨'와 '윤병노'이 두 명을 A 씨가 있는 술집으로 보냈고 이 둘은 A 씨를 납치해 양천구에 있는 노희승의 사무실로 데리고 온다.
사무실로 끌려온 A씨에게 "돈은 언제 갚을 거냐?"라며 노희승은 큰 소리를 쳤고, A 씨는"아직 돈이 없다 기다려달라." 사정 봐달려 하며 빌었다.
결국 돈을 못 갚으면 몸으로 때우란 듯이 노희승 포함 이 네 명은 1m짜리 각목으로 채무자이자 피해자인 A 씨를10시간 동안 복날 개 패듯이 팼다. 그렇게 10시간 동안 두들겨 맞은 A 씨는외상성 쇼크를 일으켰고 이 네 명은 A 씨 지갑에 있는 현금 50만 원을 갈취, A 씨를 대로변에 유기하고 도주했다.
이걸 목격한 사람이 119로 신고했으나 A 씨는 이송 후 병원에서 치료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사건 이후

이 네 명중 조폭 두목인 한 씨는 얼마 안 가 검거됐지만 나머지 세 명인 사채업자 노희승과 노희승의 처남 서형택, 한 씨의 조직원 윤병노는 잡지 못했고 1999년 11월 10일 이 세 명을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수배했다.
이 셋이 6개월 이상 장기도피를 하자 2001년 상반기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수배에 고유번호 6번~8번.(죄명: 강도치사로 수배됐고 2002년 하반기~2003년 하반기에는 노희승, 서형택 이 두 명만 수배(죄명:강도살인)하다. 2004년 상반기~2005년 상반기에서는 아예 삭제, 2005년 하반기에 노희승만 강도살인 용의자로 수배되고 그 뒤로 수록되지 않았고 윤병노를 제외한 이들의 검거 또는 자수 소식은커녕 생사를 확인도 못했다.

주범 검거

주범인 노희승은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후인 1999년 7월 종로구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위조여권 중개인을 통해 타인의 신분증으로 여권을 위조했고 위조된 여권으로 다음 달인 1999년 8월 5일 캐나다 밀항하고 얼마 뒤에는 아예 미국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2012년에 FBI에서 노희승의 위조된 신분을 적발했고, 그 결과 범죄자 인도 협약으로 노희승은 대한민국으로 강제송환되었고 대법원은 노희승에게 강도치사와 공문서위변조죄 등 죄를 물어 '징역 10년'을 선고했으며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22년에 만기출소했다.

마지막 공범 검거

이렇게 2001년에 공범 1명인 윤병노와 10년 뒤인 2012년 주범 노희승이 검거된 반면 노희승의 처남인 서형택은 22년간 일본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2021년 대사관에 자수하였다. 1심에선 징역 10년, 항소심에선 징역 8년이 선고되어 2029년 만기출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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